잡혀온 남자는 이미 머리가 반쯤 함몰된 채로 숨만 겨우 쉬고 있었다. 나더러 살살하라더니 지가 이렇게 박살을 내놓고는… 우키는 작게 혀를 찼다. 보나마나 또 뿔로 들이 받았겠지. 그럼에도 눈앞의 사람이었던 것이 살아있는 이유는 악마의 권능 때문일 거다. 또한 이것이 센티넬이라서 일반인보다는 몸이 강한 게 이유일 수도 있고.
하지만 그게 어쨌든 이제 죽을 거니까.
복스의 권능으로 살아는 있지만 특히 귀가 뭉개진 인질에게 천천히 다가섰다.
“얘. 정신이 드니?”
쥐죽은듯 고개를 숙이고 있던 남자가 순간 몸을 바둥거리기 시작했다. 앗참. 우키가 혀를 살짝 내밀었다. 청테이프 떼는 걸 깜빡했네. 가볍게 손짓하자 청테이프가 떨어졌다.
“쇠막대 좀 줄래?”
옆 의자에 앉아 다리를 달랑거리던 알반에게 손을 내밀자 개구지게 얼굴을 찡긋한 그는 자그마한 손으로 렌치를 내밀었다.
“나 구경왔는데 이 정도는 보여줘어어!”
“고양이 주제에 똥강아짓하기는.”
핀잔을 주면서도 양순하게 렌치를 받아든다. 끽해야 쇠막대로 전기 충격 좀 줄 생각이었는데. 우키가 딱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금방 죽으려던 거 천천히 아프게 죽겠구나. 하지만 그것도 네 운명인 거지. 우키의 오른쪽 눈이 작게 반짝였다. 운명의 흐름을 읽는 눈에서 조금의 피눈물이 흘렀다. 순리를 거스르는 대가는 치뤄야 하므로 불만은 없다.
“응. 읽어봐도 넌 이럴 운명이었어. 그렇지만 최대한 빨리 죽게해줄테니 필요한 정보만 말해주련.”
사람보다 반죽에 가까운 그것은 턱을 덜덜 떨었다. 혀가 약간 잘려 아프겠지만… 그건 우키가 알 바는 아니었다. 혀가 아주 조금 없어도 말은 할 수 있단다.
“그러니 어서 말해주겠니? 똥강아지는 인내심이 부족해서 지 형아를 불러올 수도 있는 일이야.”
“맞아. 우키 우키 다이스키 괴롭히면 오니짱 불러서 괴롭힐 거야.”
“그 애는 유혈이 낭자한 걸 좋아하는 취향이라… 죽는 게 더 늦춰질 수도 있어.”
인질이 뭉개진 고개를 여러번 끄덕거렸다. 살점이 덜렁거리는 것이 흉했지만 긍정의 표시를 한 답례로 우키는 청테이프로 그것을 살짝 붙여주었다.
“있지, 우리집 고양이가 서류를 좀 가지러 갔었던 일 기억하니? 그때 하나를 놓고 온 게 있어서 말야.”
“느, 네, 네에.”
“센터장 두 번째 서랍에 있는 건데… 넌 비서라서 알고 있겠지? 그거 열쇠만 주면 된단다. 항상 가지고 다니지 않니.”
으, 으. 형태를 알 수 없는 신음을 내뱉던 그가 잠시 망설이곤,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곤 곧바로 눈물을 뚝뚝 흘렸다.
“제발, 다른 건 다 되는데 그건 안 됩니다, 제발요. 이걸 드리면 정말 제가 죽어요.”
“으응? 얘, 걱정하지 말렴. 넌 어차피 여기서 말하나 안 말하나, 열쇠를 찾으나 안 찾으나 죽게 되어 있어. 아까 말했잖니. 이렇게 멍청해서야 원……”
남자의 눈에서 피인지 물인지 모를 것들이 흘러내렸다. 어쩌다 한 방울이 튄 것을 본 우키는 침착하게 렌치를 염력으로 들어 이미 뭉개진 곳에 한 번 더 내리쳤다. 끔찍한 비명이 공장을 울리고 알반은 꺄르륵 웃었다.
“진짜 추해!”
“이런 거 보면 정서에 안 좋지 않겠니 야옹아.”
“난 인간 말 몰라. 웨웅웨웅.”
“어휴.”
한숨을 내쉬곤 다시금 내리쳤다. 이번엔 튀지 않게 멀찍이 떨어진 채였다. 그 김에 알반의 의자도 뒤로 끌었다. 이 철없는 고양이를 어쩔꼬.
렌치로 여러 번을 강타해 안면은 형체를 알 수도 없이 뭉개졌다. 물론 반죽을 좀 더 반죽한다고 티가 나진 않겠지만. 응. 복스 덕분에 살아는 있잖니.
“자, 이제 말할 차례란다.”
흐윽, 흑. 흐느낌 끝에 남자는 덜덜 떨리는 손을 우키의 쪽으로 들이밀었다.
“응?”
“칼… 날붙이를 하나만 주십시오… 몸 속에 있습니다, 열쇠가……”
가만히 눈을 깜빡이던 우키가 별안간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허리까지 젖혀가며 웃다가, 눈에 맺힌 눈물을 닦았다. 왜 웃는 지는 모르지만 그냥 동료가 웃어서 기분이 좋았던 고양이도 몸을 흔들거리며 웃었다.
“착하구나. 아주 책임감이 강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자의 복부가 갈라졌다. 내장이 쏟아지지 않게 고정시켜 놓고, 우키가 알반에게 눈짓했다.
“꺼낼 수 있겠니?”
“웅. 근데 실 있어야 돼.”
“여기.”
“Yipeeee.”
신나게 실을 받아든 알반은 괴도다운 손놀림으로 복부 안으로 실을 던져 넣었다. 실은 살아있는 뱀처럼 꿈틀거리다가, 이내 반짝거리는 조그마한 것을 꺼내어 우키가 준비해둔 물이 담긴 그릇에 넣었다.
“잘했어.”
“헤헤헤헤.”
음 그럼. 고정을 풀어볼까.
“알반. 먼저 나가서 써니랑 놀렴.”
“네에에에.”
우키만 남은 창고에서는 처절한 비명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저녁은 뭐먹지. 미스타한테 한 번 맡겨볼까. 알반의 머릿속에는 또다른 재앙을 만들어 낼 생각만이 가득했다.
-
그래서 이 사달이 났지.
“누가 미스타한테 부엌 출입 금지권 풀었어!”
슈의 절규가 반정부군 연합소를 쩌렁쩌렁하게 흔들었다. 전자레인지에서 파생한 불길이 점점 커져도 모두 태연했다. 알반은 불꽃놀이 한다고 폭죽이나 사왔고 복스를 비롯한 나머지 럭시엠은 이미 포기한 얼굴로 드러누워있었다.
일이 커져도 우키와 슈가 있으니 딱히 생명에 위협은 없어서 그런 거다. 둘 중 하나가 물로 꺼줄 거야. 서로에 대한 신뢰로.
근데 신뢰가 있는 건 있는 거고…
“얘들아. 이걸 나한테 해결하라고 맡겨만 놓는 건 너무 하지 않니. 나 방금 사람 담그고 왔는데.”
“슈가 마력 보충한다고 어제 산삼같은 거 먹더라. 넌 가만히 있어도 돼.”
써니가 다정히 말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탄내가 진동했다. 이 우당탕탕 럭틱스 하우스 우째.
럭시엠과 녹틱스에게 감화당해서(실은 세뇌지만) 열심히 일하고 있는 그들은 아무것도 몰랐다. 개중엔 센티넬도 많았지만…… 그 누가 해결할 수 있으랴.
떨떠름한 얼굴로 지켜보던 우키는 그냥 방으로 들어가서 누웠다. 탄내는 바람을 일으켜 제거한 상태였다.
별안간 그의 오른 눈이 빛난다. 세계를 거스른 대가로 다시금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우키의 입가에 묘한 웃음기가 감돌았다. 아아, 새로운 세계여. 하늘은 이제 보라색이 될 거고 해는 검은색이 되어버릴 거야. 멸망이 머지 않았어. 새로운 힘이 지구에 떨어지게 되면 순리를 거스른 이능력자들은 모두 죽어버릴 거야. 우리는 빼고 말이지. 얼마나 아름답니.
하하하. 아름답지 못한 건 모두 죽어야 해.
우키의 손아귀에 있던 괴생명체가 끔찍한 소리를 내며 우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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