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사랑이 어디있니, 이 신(sin)시티에 말야.
사람들은 낭만도 없고 멋도 없어졌다. 모두 기계화가 되면서 감정혁명 비슷한 게 일어난 거다. 근데 이제 감정이 폭발하는 게 아니라 감정이 거세되는.
그렇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회는 전반적으로 살만해졌다. 감정이 거세되고 오직 이성으로만 굴러가는 사회. 누구도 도움을 청하지 않고 도움을 주지 않는 사회. 철저히 분업화 되고 엄살 따윈 없는 사회. 아 얼마나 아름다운 자본주의 개인화 시대인가.
약간 이음새가 풀린 스트랩을 다시 조이며 길거리를 한가로이 거닐었다. 멀쩡히 두 발을 땅에 딛고 있는 사람은 그 혼자 뿐이었다. 기실,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괴물이 아닌가. 하기야 현대에 와서는 괴물의 경계가 모호해지기는 했다. 손 안 대고 물건을 옮기거나 허공에 불 피우는 등의 능력은 이제 특별할 것도 없었다. 아는 사람 중엔 완전한 사이보그도 있는데 뭐.
신 시티,
영원한 영광의 신 시티는 당신을 환영합니다!
규율과 법도가 없는 곳!
더이상 얽매이지 않아도 되는 삶!
모든 걸 가지세요.
신 시티는 다시 한 번 여러분을 사랑하며 환영합니다!
하늘은 보라색으로 반짝이고 별똥별은 쉴 새 없이 떨어진다. 모두는 호버보드를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며 불꽃이 화려하게 터졌다. 넘쳐나는 스트립 클럽과 음주가무의 장소들.
아아, 난 이 도시를 사랑해.
가볍게 웃음을 터트린 우키가 제자리에서 한 바퀴를 빙글, 돌았다. 느슨한 소매가 펄럭이며 향을 흩뿌린다.
그대로 어둑한 골목으로 들어간 우키는 도시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구식 폴더폰을 꺼내어 펼쳤다.
[ 12시 30분, 데미르타 분수 광장 앞 타깃 2명. 신상 정보는 첨부 파일 열람 요망. ]
우우. 한시도 맘을 놓고 거리를 활보할 수가 없어. 말은 투덜대면서 얼굴엔 미소가 만연하다. 곧 우키의 손끝이 검게 물들었다. 혈액 중 극독이 돌기 시작한 거다. 자연의 법칙을 위배하는 힘. 염산 같은 종류는 아니었고 외려 뱀과 같은 동물이 가지는 신경독 종류였다.
하얗게 이를 드러내고 웃은 우키는 옆 건물 파이프를 타고 옥상으로 올랐다. 손은 주머니에 넣은 채였다. 팔락이는 옷자락이 주인을 닮아 느른하고 창백했다.
🔮
데미르타 타워 꼭대기에서 분수를 보며 다리를 달랑대며 앉아있던 우키가 다시금 힘을 끌어올렸다. 허공에 손을 휘두르자 짙은 안개가 생성된다. 재차 휘두르니 안개의 색이 검붉게 변했다. 그러나 곧 투명하게 산발적으로 흩어진다. 안개는 느리지만 정확하게 타깃의 호흡기를 향했다.
우키는 몸을 일으켜 첨탑 꼭짓점에 섰다. 거세게 부는 바람이 시야를 가린다. 하지만 욱신대는 오른쪽 눈으로 알 수 있다. 암살은 성공적이었다는 걸. 별안간 그는 한숨을 내쉰다. 아직 갈무리 되지 못한 힘 때문에 숨에는 독성이 섞여있다. 그의 주변을 맴돌던 소형 드론과 벌레들이 즉시 온 구멍에서 체액을 흘리며 녹아내렸다.
이제 좀 구경해볼까. 우키는 바람을 무시하고 허공에 발을 딛었다. 아까 땅 위에 서있었듯 그는 허공을 저벅저벅 걸었다. 모든 것은 순리대로. 우주는 그의 편이었으므로.
독소때문에 흔들리는 손톱을 몇 개 뽑고 분수 광장으로 내려섰다. 주변은 죄다 호버보드를 타고 날아다니고 있었고 물안개가 자욱했기에 아무도 그를 이상하게 보지 않았다.
붕붕 뜨는 걸음으로 산뜻하게 거리를 거닐었다. 우키의 주머니에 얌전히 잠들어 있던 구식 휴대폰이 짧게 몸을 떨었다. 이번엔 10억 일레인? 꽤 고위층의 자제였고 후계 싸움에 이바지 했으니 두둑히 챙겨줬을 거다.
태연하게 노점상에서 1.5 일레인을 지불하고 샌드위치를 집어든 우키는 아주 조금씩 그것을 베어물었다. 원체 입이 작은 탓이다. 새모이처럼 먹어도 입이 가득 찼고 배도 금세 찼다.
호밀빵 사이에 자잘하게 갈아져 있는 마릴린 고기덩이가 일품이었다.
오, 사랑스러운 마릴린.
일용한 양식이 되어주어 영원히 그녀에게 감사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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